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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덕산면에 자리한 수덕사는 가을이면 산사 전체가 단풍빛으로 물든다. 수덕사 입구에서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단풍길은 붉은 잎과 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져, 걷는 이마다 자연의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고요한 절집의 풍경과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그리고 은은한 풍경소리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한층 깊게 만든다. 수덕사의 단풍은 단순한 자연의 색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전하는 계절의 선물이다.
산사로 스며든 가을, 수덕사에서 만나는 고요의 미학
예산의 수덕사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로, 백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깊은 정신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곳이 더욱 특별해지는 시기는 바로 가을이다. 수덕사로 향하는 길목마다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가득하고, 그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앉는다. 이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세속의 번잡함이 서서히 멀어지고, 마음이 자연스레 차분해진다. 가을의 수덕사는 단풍 그 자체보다도 ‘고요함의 깊이’로 기억된다.
수덕사 입구에 들어서면, 두 줄로 늘어선 단풍나무와 소나무가 만들어낸 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붉은 잎 사이로 바람이 스치며 낙엽이 흩날리고, 그 아래를 걷는 발소리는 마치 작은 명상곡처럼 들린다. 절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 좋다. 바닥에는 낙엽이 부드럽게 깔려 있고,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길 위에 황금빛 무늬를 새긴다. 걸음마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그 자체로 한 폭의 풍경화가 완성된다.
수덕사 대웅전은 단풍으로 둘러싸인 가을의 중심이다. 목조건물 특유의 고즈넉한 색과 단풍의 붉은빛이 어우러지며,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바람이 불면 단풍잎이 천천히 떨어져 대웅전 앞마당을 붉게 물들이고, 그 위로 들려오는 풍경소리는 마음을 정화시킨다. 세상의 소음을 잊고 오롯이 자연과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수덕사 가을 단풍길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또한 수덕사 뒤편의 덕숭산 자락은 가을 산행 명소로 손꼽힌다. 산자락을 따라 펼쳐진 단풍은 색이 짙고, 산 안개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른 아침의 수덕사는 더욱 아름답다. 산문 너머로 새벽 햇살이 스며들고, 그 빛이 단풍잎 사이를 통과할 때 붉은색과 금빛이 섞인 황홀한 장면이 펼쳐진다. 그 순간, 누구나 마음속에서 ‘가을이 완성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단풍으로 이어진 길, 수덕사에서 걷는 가을의 순례
수덕사 단풍길의 시작점은 덕산온천 입구다. 이곳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약 1.5km 구간은 ‘수덕사 가을 산책로’로 불리며, 전 구간이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길 초입에서는 노란 은행잎이 먼저 맞이하고, 조금 더 올라가면 붉은 단풍이 길 양쪽을 감싸며 붉은 터널을 만든다. 가을 햇살이 이 터널을 통과하면 빛이 잎사귀를 투과하며 따뜻한 오렌지빛을 만들어낸다. 사진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 바로 이곳이다.
중간 지점에 위치한 ‘수덕여관 터’는 잠시 숨을 고르기에 좋은 쉼터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으면, 나뭇잎 사이로 흩날리는 햇살이 얼굴에 내려앉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함께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단풍길은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잠시 눈을 감으면 바람과 낙엽이 섞인 자연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단풍은 색으로만 계절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냄새와 온기, 소리로도 가을을 전한다.
길의 끝에는 수덕사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은 우리나라 현존 목조건축 중에서도 대표적인 고려시대 양식으로, 단풍과 어우러져 더욱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당에는 붉은 잎이 부드럽게 쌓여 있고, 기둥과 처마 끝에도 낙엽이 내려앉아 있다. 고요한 산사의 풍경 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목탁 소리는 마치 가을의 심장 박동처럼 느껴진다. 이곳에 서면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것이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수덕사에서 조금 더 오르면 덕숭산 중턱의 ‘관음전’과 ‘선미술관’이 있다. 관음전으로 향하는 길목은 가을철 최고의 단풍길 중 하나로 꼽히며, 붉은 단풍잎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듯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수덕사 전경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사찰 지붕 위로 붉은 단풍잎이 포근히 덮여 있고, 그 뒤로 펼쳐진 덕숭산의 능선이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다. 가끔 스님들이 천천히 걷는 모습이 보이면, 풍경은 더욱 완전해진다.
단풍을 즐기며 내려오는 길에는 온천수로 피로를 풀 수 있는 덕산온천단지가 자리해 있다. 수덕사에서 느낀 마음의 평화에 더해 몸의 피로까지 풀 수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가을 여행 코스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단풍을 바라보는 순간, 가을의 정취는 절정을 맞이한다.
가을이 남긴 고요한 숨결, 수덕사의 마지막 붉은빛
예산 수덕사의 가을은 단풍이 떨어지고 난 후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그것은 색이 아니라 분위기, 즉 마음의 온도로 완성된다. 붉게 타올랐던 잎들이 하나둘 바닥에 내려앉고, 돌계단 위를 덮을 때면 세월의 흐름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쓸쓸함이 아니라 따스함이다. 수덕사의 가을은 ‘사라짐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남는 평화는 영원하다. 단풍잎이 흩날릴 때마다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에 담긴 영원을 느낀다.
이곳의 가을을 걸으면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느리고, 종소리는 멀리서 천천히 퍼져온다. 단풍잎은 바람에 실려 돌담 위를 스치고, 그 소리는 마치 세상의 모든 근심을 덜어주는 듯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그 한숨 끝에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수덕사의 가을은 그렇게 사람을 치유한다. 그것은 화려한 풍경의 감동이 아니라, 고요한 시간 속에서 마음을 닦아주는 위로의 힘이다.
대웅전 앞에서 잠시 서 있으면, 바람이 붉은 잎을 흩날리고, 그 아래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그 장면은 말없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월은 흘러도 풍경은 반복된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나무가 물들고, 같은 길 위에 낙엽이 쌓인다. 그러나 그곳을 걷는 사람의 마음은 매번 다르다. 어떤 해에는 외롭고, 또 어떤 해에는 평화롭다. 그만큼 수덕사의 단풍길은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마음의 거울’이다.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춰본다.
결국 수덕사의 가을은 자연이 들려주는 한 편의 선시(禪詩)다. 화려하지 않으나, 그 속에는 삶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단풍잎이 떨어질 때마다 ‘놓아야 비로소 평화가 온다’는 것을, 낙엽이 쌓인 길을 걸을 때마다 ‘멈춤이 곧 여정의 일부’ 임을 깨닫게 된다. 바쁜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잠시나마 자신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연은 말없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붉은 잎이 모두 떨어지고 난 뒤에도 수덕사의 가을은 끝나지 않는다. 돌담 위에 남은 햇살,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사찰 종루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속에는 여전히 계절의 숨결이 남아 있다. 가을이 물러난 자리에는 겨울의 고요함이 찾아오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붉은빛이 은은히 타오른다. 그 불씨 같은 따스함이 바로 수덕사가 남긴 계절의 유산이다. 이곳의 가을을 걸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